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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삶, 이데아론, 교육법

by 응지팍 2023. 3. 15.

플라톤

플라톤은 다양한 서양 학문에 영향력 있는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객관적 관념론(objective idealism)의 창시자입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며, 대학의 원형인 고등 교육 기관 ‘아카데메이아’의 교육입니다. 플라톤 저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그의 대화편입니다. 비록 일부 편지는 단지 그의 이름을 붙여서 전해지지만, 플라톤이 쓴 진짜 대화편은 모두 온전하게 전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1. 삶

플라톤은 아테네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었을 때 소크라테스에게 배우고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저서는 모두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된 변증론에 관한 《대화편》이어서 그와 스승과의 학설을 구별하기 힘든 것은 아쉽습니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정치가로서의 꿈을 버리고 정의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여 키레네 학파로부터 이데아와 변증법의 기초를 얻었고, 피타고라스 학파를 접하며 실천적 정신과 실생활에의 흥미를 얻어 그의 독자적인 사상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플라톤은《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라케스〉 등을 썼습니다.
그는 자기의 이상 국가를 실현해 보고자 친구인 디온의 권고로 시켈리아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의 초청에 응하였으나, 그의 과두 정치를 비난함으로써 디오니시오스 1세의 분노를 얻어 노예로 팔리기까지 하였습니다. 후에 그의 저작을 본 퀴레네 사람 덕분에 구출되어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건립하고 제자 양성에 전력하면서 저작에 몰두하였다. 〈향연〉, 〈파이돈〉, 〈국가〉, 〈파이드로스〉 등 주요 저술이 여기서 이루어졌고, 이 학원은 529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대학교의 초기 형태인 ‘아카데미’(Academy)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기원전 357년 디오니시오스 2세의 간청을 받자 망설이던 끝에 다시 시켈리아로 가서 이상 정치를 펴보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1년 만에 귀국하여 〈법률〉 등 몇 개의 저서를 더 쓴 뒤 81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 이데아론

플라톤은 ⟪파이돈⟫부터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에서 독립하여 이데아론 이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학설을 제창하였습니다. 우리가 삼각형을 생각할 경우에 현실적으로 삼각형을 아무리 정확하게 그린다고 해도 어느 하나도 완전하게 그려 낼 수 없습니다. 한 변의 직선도 완전하게 긋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완전한 직선, 완전한 삼각형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으며 그 존재를 인정하고 계산도 하여 해답합니다. 결국 현실에 있어서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셈인 거죠. 현실의 삼각형은 이 이데아를 인정하는 까닭에 삼각형으로 인식할 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학의 대상뿐만 아니라 선(善)의, 미(美)의, 용기의 이데아라는 것도 거기에서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완전한 선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겠으나 완전한 선의 이데아는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보다 이것이 낫다고 하는 비교는 할 수 없게 됩니다. 
아름다운 꽃은 떨어지고 아름다운 경치가 폐허가 되어도 아름다움 자체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미의 이데아입니다. 이 미의 이데아에 현실의 개체가 의탁 될 때 비로소 아름다운 개체가 됩니다. 즉 미의 이데아는 아름다운 개체의 원인입니다. 플라톤은 사람의 영혼은 원래 이데아계(界)에 있었는데 육체를 갖추며 이데아를 망각하여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선·미를 인식하는 것은 영혼이 원래 살던 이데아계를 상기하는 것과 같다는 상기설을 주장하였습니다.

3. 교육 방법

그는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고 하는 유명한 철인 정치론을 전개했습니다. 국가를 개인의 확대로 생각하여 개인에서의 정욕이 농·공·상업의 서민이며, 기개의 부분은 군인·관리, 이성의 부분은 통치자고, 이성은 당연히 선의 이데아를 인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통치자의 교육 제도와 방법에서 그의 교육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교육을 5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단계는 출생부터 17세까지로, 이 시기는 비교적 수준이 낮은 일반적 정서적 방면에 해당하는 학예와 체육을 주로 하였습니다. 그중 체육은 단지 육체의 단련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 이상의 정신적 도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들 과목은 유희적인 방법으로 가르치게 하였고, 이런 자유로운 학습을 하는 가운데 각자의 개성이 발견되게 하였습니다.

둘째 단계는 17세부터 20세까지로, 이 시기의 교육은 군사훈련의 기초가 되게 하며, 어떤 곤경에도 참아낼 수 있는 강인한 심신을 기르기 위하여 체육만을 전수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성적이 불량한 자는 생산자 계급으로 남게 했습니다.

셋째 단계는 20세에서 30세까지로, 이 시기에는 철학의 예비교과로써 수학·기하·천문·음악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했습니다. 이 시기에 성적이 불량한 자는 군인으로 남게 했습니다.

넷째 단계는 30세에서 36세까지로서, 이때에는 변증법을 배웠습니다. 이 시기에는 감각적인 것을 떠나 순수하게 관념적으로 사물의 본질을 취급하는 시기로 설정하였습니다.

다섯째 단계는 35세에서 50세까지로, 이 시기를 플라톤은 '동굴에 들어가는 시기'로 비유하였습니다. 이때가 되면 인간은 속세에 나와 군사와 정치를 실습·연구하고, 풍부한 경험과 견문을 쌓게 하였습니다.

50세 이후에는 평생토록 변증법의 초보적인 대상인 선(善)의 이데아를 연구하고, 더불어 정치를 맡으며 후진을 교육합니다. 이러한 '아카데미아'에서 실행한 교육 방법은 소크라테스적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성찰과 진리 탐구를 위한 방법이며, 생명이 없고 또 살아 있는 말을 존중하는 대화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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